쇼핑의 종말, 그리고 AI가 만드는 새로운 소비의 시작

Bopyo Park 22 Sep 2025

에코 멤버님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최근 AI 소식 중에서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내용을 들고왔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a16z의 팟캐스트에서 ‘AI가 이커머스에 미칠 영향’에 대한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는데요. 많은 분들이 궁금하실 내용이고 저도 궁금한 내용인데 그동안 AI와 이커머스 주제로만 이야기한 팟캐스트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들어보게 되어서 이 내용을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정보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댑니다. 특히 무언가를 ‘구매’하려 할 때, 그 바다는 온갖 광고와 SEO(검색엔진최적화)로 오염된 ‘쓰레기 정보의 늪’으로 변하곤 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지만, 그 정보 자체가 상업적 의도로 정교하게 조작되어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죠.

오늘은 a16z의 통찰을 바탕으로, AI가 어떻게 이 병든 온라인 상거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와 기회가 어디로 이동할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AI로 쇼핑하는 법’에 대한 팁이 아닙니다. 정보의 비대칭성과 신뢰의 붕괴라는 거대한 문제에 AI가 어떻게 맞서 싸우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과 기업은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재편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가짜 리뷰와 광고글에 지쳐 합리적인 소비를 포기한 적이 있었던’ 분, 혹은 거대한 AI의 파도 앞에서 ‘그래서 이걸로 어떻게 돈을 번다는 거지?’라며 막막했던 분이라면,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 미래의 상거래 지형도를 한발 앞서 그려보는 지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1. 병든 인터넷: ‘쓰레기 정보’는 어떻게 우리의 지갑을 공격하는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월드와이드웹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a16z 팟캐스트의 진행자들은 현재 인터넷의 상태를 “쓰레기(crap)”라는 직설적인 단어로 표현합니다. 특히 상품 정보를 얻으려 할 때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소비자를 위한 순수한 정보가 아닌, 제휴(Affiliate) 수익을 노리고 SEO에만 극단적으로 최적화된 ‘쓰레기’라는 것입니다. (다들 공감하시죠?)

과거의 비즈니스는 좋은 입지에 가게를 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그 ‘입지’는 구글 검색 결과의 첫 페이지로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이 새로운 ‘입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정보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 아닌, 검색 알고리즘의 허점을 파고드는 방식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최고의 러닝화’를 검색했을 때 보게 되는 수많은 ‘Top 10 러닝화 추천’ 글들은 실제로 모든 신발을 신어보고 작성한 객관적인 리뷰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부분은 가장 높은 제휴 수수료를 지급하는 제품들로 목록을 채우고, 검색 결과 상위에 노출될 자극적인 제목과 키워드로 버무려진 ‘콘텐츠의 탈을 쓴 광고’입니다.

아마존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판매자들이 알리익스프레스에서 동일한 OEM 상품을 떼어와 각자의 로고만 붙여 판매하고, 가짜 리뷰로 순위를 조작합니다. 소비자는 수십 개의 다른 상품 페이지에서 사실상 동일한 제품을 보며 혼란에 빠집니다. 이처럼 ‘정보의 오염’은 우리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만들고, 결국 합리적인 소비 결정을 내릴 의지마저 꺾어버립니다.

AI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쓰레기 정보를 요약하는 AI’는 여전히 쓰레기일 뿐입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정보의 출처와 신뢰도를 판별하고, 오직 소비자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의 등장에 있습니다.

2. AI 쇼핑 에이전트: 구글의 ‘검색세’는 어디로 가는가?

그렇다면 새로운 메커니즘은 어떤 모습일까요? 핵심은 바로 ‘AI 쇼핑 에이전트’의 등장입니다. 지금까지 구글은 소비자들이 구매 여정을 시작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며 막대한 ‘검색세(a tax on GDP)’를 거둬들였습니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클릭을 얻기 위해 구글에 광고비를 지불했고, 이 비용은 고스란히 제품 가격에 전가되었습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가 소비의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면, 이 거대한 ‘세금’의 흐름이 바뀔 수 있습니다.

AI 에이전트는 구매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소비를 혁신할 것입니다.

A) 반복 구매의 완전 자동화: ‘UPC’가 있는 모든 것

세제, 치약, 특정 브랜드의 커피 원두처럼 바코드로 식별 가능한(UPC, Universal Product Code) 공산품 구매는 더 이상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나의 AI 에이전트는 내가 선호하는 제품의 가격을 전 세계 모든 온라인 쇼핑몰에서 실시간으로 추적합니다. 그리고 최적의 할인율, 쿠폰, 캐시백 혜택이 적용되는 바로 그 순간, 나를 대신해 자동으로 구매를 완료합니다. 심지어 어떤 신용카드로 결제해야 포인트 혜택이 가장 큰지까지 계산하죠. 이것은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인간이 반복적인 최저가 검색이라는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됨을 의미합니다.

B) 신뢰 기반의 구매 대리: ‘코스트코’와 같은 큐레이션

문제는 UPC가 없는 제품들, 즉 품질과 취향이 중요한 영역입니다. 여기서 AI 에이전트의 핵심 가치는 ‘신뢰’가 됩니다. 팟캐스트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커머스 모델로 ‘코스트코(Costco)’를 꼽습니다. 코스트코의 비즈니스 모델은 개별 상품의 마진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권의 가치’를 지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회원들이 믿고 살 수 있도록 품질이 검증된 소수의 제품만을 큐레이션하며, 일정 수준 이상의 마진을 남기는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합니다. “이 제품이 코스트코에 있다면, 믿을 수 있다”는 강력한 신뢰 자산이 그들의 핵심 경쟁력인 셈입니다.

미래의 AI 쇼핑 에이전트 경쟁의 승패는 누가 더 똑똑한 LLM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소비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신뢰받는 코스트코’가 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이 AI 에이전트는 오염된 리뷰와 광고를 걸러내고, 유튜브, 레딧 등에서 진정한 사용자 경험이 담긴 영상과 글들을 분석해 “당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 가장 부합하는 제품은 이것입니다”라고 제안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최고의 러닝화’를 검색하는 대신, “이번 주말에 비 온 뒤 진흙길을 5km 달릴 건데, 발목을 잘 잡아주고 방수 기능이 뛰어난 신발을 추천해 줘”라고 ‘대화’하게 될 것입니다.

3. 새로운 기회: AI 시대의 상인은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판매자, 즉 ‘상인’들에게도 거대한 지각 변동을 예고합니다. AI 에이전트가 소비의 전권을 위임받는 시대에, 기업들은 더 이상 인간의 눈을 속이는 SEO나 광고에 의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요?

A) AI가 이해하기 쉬운 ‘정직한 정보’ 제공자

미래의 웹사이트는 사람이 아닌, AI 에이전트가 탐색하고 평가하기 좋은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제품의 성분, 제조 과정, 실제 사용 후기, A/S 정책 등 모든 정보가 투명하고 정직하게 제공될수록 AI 에이전트의 추천 목록에 오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제 기업의 마케팅은 소비자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설득’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B) 전문화된 ‘버티컬 AI 에이전트’의 부상

모든 것을 아는 범용 AI 에이전트도 강력하지만, 특정 분야에 깊이 파고드는 ‘버티컬(Vertical) AI 에이전트’에게도 큰 기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에 대한 모든 것을 학습하고, 수많은 전문가와 동호인들의 대화 데이터를 파인튜닝하여 최적의 자전거를 추천해 주는 AI 에이전트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이 에이전트는 단순 추천을 넘어, 개인의 신체 사이즈에 맞는 피팅 값까지 제안하며 대체 불가능한 전문성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C) ‘인간적 경험’과 ‘진정성’의 가치 상승

AI가 효율성과 합리성의 영역을 완벽하게 처리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비효율적이고 감성적인 경험에서 더 큰 가치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집이나 자동차와 같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우리는 여전히 전문가와 직접 대면하여 상담하고, 제품을 직접 만져보고 경험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또한, AI가 만든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한 개인의 진솔한 경험과 철학이 담긴 이야기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A close up of a branch with leaves — Photo by Ingmar / Unsplash

오늘 이야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I가 바꾸는 커머스의 미래는 단순히 ‘더 빠른 배송’이나 ‘더 저렴한 가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난 20년간 인터넷을 지배해 온 ‘검색과 광고’라는 패러다임이 ‘신뢰와 대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거대한 흐름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검색’이라는 행위를 통해 소비를 결정해왔습니다. 하지만 검색 결과의 대부분이 광고와 조작된 정보로 가득 찬 세상에서, 당신의 소비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AI 집사’가 등장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어쩌면 우리는 비로소 ‘정보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무의미한 노동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데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쏟을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미국 이커머스 분야와 AI 분야에 몸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경험하는 내용들을 에코 뉴스레터 구독자님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함께 나누고 싶으시다면 이 뉴스레터를 계속 구독해주시고 주변에도 많이 소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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