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익명의 힘과 새로운 마케팅 방정식

Bopyo Park 28 Nov 2025

에코 멤버님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Y Combinator의 게리 탄(Garry Tan)과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스(Lightspeed Venture Partners)의 파트너인 마이크 미나노(Mike Mignano)의 대담 내용을 바탕으로 깊은 통찰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금 ‘생성형 AI’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있습니다. 누구나 음악을 만들고(Suno), 누구나 영상을 만들며(Sora), 누구나 코딩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만들기’가 쉬워질수록 성공의 문은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이크 미나노는 이 시점에서 아주 본질적인 화두를 던집니다.

“만드는 것이 쉬워진 시대, 과연 무엇이 승패를 가르는가?”

오늘은 그의 경험과 통찰을 통해, AI 시대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변하지 않는 가치’와 앞으로 다가올 ‘소셜 미디어의 종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기능’이 아닌 ‘도달’에 집중하라: 앵커(Anchor)가 남긴 교훈

마이크 미나노가 창업했던 팟캐스트 플랫폼 ‘앵커’의 초기 이야기는 지금의 AI 빌더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처음 앵커는 ‘소셜 오디오’ 플랫폼을 꿈꿨습니다. 누구나 쉽게 목소리를 녹음하고 공유하는 기능을 만들었죠. 하지만 회사는 곧 자금이 바닥나고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람들은 ‘녹음’을 원한 것이 아니라, 내 목소리를 들어줄 ‘청중’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사를 살려낸 결정적인 한 방은 기술적 혁신이 아니었습니다. 사용자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스포티파이나 애플 팟캐스트에 자동으로 콘텐츠가 올라가게 만든 ‘배포(Distribution)’의 혁신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이를 자동화할 기술이 없어 직원들이 밤새 수작업으로 RSS 피드를 생성해 등록해 주었다고 합니다. 소위 ‘확장 불가능한 일을 하라(Do things that don't scale)’는 실리콘밸리의 격언을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지금 AI 씬(Scene)도 마찬가지입니다. AI 덕분에 ‘제품’을 만드는 비용은 0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기능은 더 이상 차별화 요소가 되기 어렵습니다. 마이크는 단언합니다. “AI가 리텐션(유지율)을 높여줄 수는 있지만, 배포(Distribution)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결국, 아무리 뛰어난 AI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고객에게 도달할 ‘유통 경로’를 뚫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이제 크리에이터로서, 혹은 사업가로서 여러분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무엇을 만들까’보다 ‘어떻게 도달할까’에 찍혀야 합니다.

2. 소셜 미디어의 3단계 진화: 소라(Sora)와 ‘생성형 미디어’의 시대

이번 대담에서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소셜 미디어의 종말’에 대한 예측입니다. 마이크는 소셜 미디어의 역사를 세 단계로 구분합니다.

1단계 (소셜 그래프): 페이스북, 트위터처럼 ‘내가 아는 사람’을 팔로우하고 그들의 소식을 듣는 시대.
2단계 (관심 그래프): 틱톡(TikTok)처럼 내가 누구를 아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고리즘이 파악해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시대.
3단계 (생성형 미디어): 그리고 이제 다가올, OpenAI의 소라(Sora)가 여는 시대입니다.

3단계에서는 더 이상 ‘누군가가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알고리즘이 내 취향을 완벽히 파악하여,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생성’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소셜(사회적)’ 미디어의 끝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 크리에이터가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기회가 생깁니다. 바로 ‘고유성(Uniqueness)’과 ‘취향(Taste)’입니다. 모든 것이 자동으로 생성되는 세상에서, 진짜 인간의 스토리, 나만의 독창적인 캐릭터, 그리고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취향’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3. 익명(Anon)의 힘과 새로운 마케팅 방정식

그렇다면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도달(Distribution)’을 만들어내야 할까요? 마이크는 흥미롭게도 ‘X(구 트위터)의 익명 계정(Anon)’과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언급합니다. 과거에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오가닉(Organic)’하지 않은, 돈으로 산 마케팅이라며 폄하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테이블 스테이크(Table stakes, 기본 조건)’가 되었습니다.

특히, 제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익명 계정으로 밈(Meme)을 만들고, 대중의 반응을 테스트하며 팬덤을 모으는 전략은 리스크 없이 시장을 검증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짠 하고 공개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AI 시대의 속도는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거창한 브랜드가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지금 당장 가벼운 마음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그들의 반응을 살피며, 나만의 ‘배포 채널’을 구축하는 연습을 시작해야 합니다.

Dramatic mountains emerge from misty coastal sand dunes at sunrise. — Photo by Marco Grosso / Unsplash

오늘 마이크 미나노의 이야기는 기술 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비즈니스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AI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도구로 지은 집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 혹은 준비하고 있는 콘텐츠가 있다면 잠시 멈추고 질문해 보세요.